2020의 게시물 표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를 읽고

이미지
 이 책은 두 사람의 우정으로 시작한다. 재준이와 유미는 서로 심도 있는 이야기와 고민거리를 털어 놓으며 서로 가까워졌다. 그러나 어느 날 새벽, 재준이는 "기사완성축하해줘밤이깊어도죽음은오지않네첫줄이야죽이지않냐깨는대로답보내잘자"라는 문자를 보낸 뒤 오토바이 사고로 즉사하게 된다. 소중한 친구를 잃은 유미의 심정은 어땠을까. 서로 가장 가까이에서 마음을 나눈 친구가 유미였다. 유미는 죽은 친구의 일기장을 읽어내려가며 그동안 먹었던 음식, 나눴던 대화, 걸었던 길을 회상한다. 그렇게 그녀는 친구를 보내준다. 재준이와 같이 세상에 급작스러운 사고는 정말 빈번히 일어난다. 우리가 식사하는 지금, 책을 읽는 지금,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누군가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중일 것이며, 호흡이 점점 멈추는 중일 것이다. 사고사는 주위에 정말 큰 충격을 주는 죽음인 것 같다. 정말 가까운 사람이 당장 내일 사고사를 당한다면 그 충격은 내게 상상도 못 할 만큼일 것이다. 나는 여지껏 항상 다가올 나의 밝은 앞날, 미래에 대한 꿈만을 키워왔다. 하지만 이젠 나도 변수를 고려해볼 줄 알아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죽음이란 참 심오하고 알다가도 모를 인생의 논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이 마냥 무섭고 두려운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온 길이 어떻든지 죽음의 순간에 평안하면 그걸로 내 삶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 덕분에 내게 꿈이 생겼다. 자연사로 웃으며 눈을 감기.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다만 재준처럼 사고사로 죽는다면.. 그것도 내 운명이겠지만, 죽기 전에 주위의 소중한 이들에게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해준 책이다.

[달러구트 꿈백화점]를 읽고

이미지
이 책의 주제는 '꿈'이다. 오랜만에 청소년 소설을 읽으니 감회가 새롭고 반가웠다. 사람들에게 꿈이란 무엇일까? 나한테는 일상 속에 신비한 존재이다. 꿈을 잃고 찝찝해진 적도 많지만, 예지몽 같은 꿈들을 통해 신기한 경험도 했다. 사실 잠을 자면서 '꿈'을 꾸면 개운하게 일어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판타지적인, 몽환적인 요소의 40%는 꿈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원리와 원천이 어떻든, 꿈은 내게 거의 필연적인 존재이다. 언젠가 한 번은 정말 특이한 꿈을 꿨다. 너무 인상적이고 소름돋는 내용이었기에 눈이 떠지자마자 잊지 않기 위해 메모장에 적어내려갔다. 사회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요만큼의 동심을 지켜주는 게 바로 꿈이다. 그런 꿈이라는 소재를 책의 주제로 다룬다는 게 정말 신선하지 않나? 여기 '꿈 백화점'은 잠이 든 사람만 오갈 수 있는 곳이다. 자신이 꾸고 싶은 꿈을 사고팔 수 있다는 게... 나라면 과연 꿈을 살까? 의문이 들었다. 일상에 없으면 허전한 존재인 것은 맞지만 돈이 오가는 거래가 이루어질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이런 막힌 생각이 처음엔 들었다. 그런데 스스로가 갖던 트라우마를 꿈을 사며 극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면서 '아, 꿈은 이 정도로 우리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깊게, 푹, 즐겁게 꿈을 꾸고 일어나면 다음날 아침이 조금은 더 개운해지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 잠들어 꿈 속을 날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 꿈을 골랐을까. 꿈이란 유사과학이 더욱더 궁금해졌다.

분노의 포도

이미지
  대공황의 시기를 거친 1930년대 미국의 톰 조드는 소작하던 땅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된다. 정착민이었던 그가 캘니포니아까지의 2,000마일을 달리는 유목 이민 되어 버린 이 막장적인 내용이 줄거리라고 한다. 난 아직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였으나 주인공의 인물미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황무지라고 느껴질 만큼 절박하고 메말라 있는 그의 마을. 마을 사람들의 좌절감 속에서 그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은 '데미안'과 같이 청소년 문학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기에 읽으면서 글의 핵심이 무엇인지,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 뭔지를 한참 헷갈렸다. 물론 내가 아직 끝까지 읽지 않은 것이 이유이기도 하다. 큰 모래폭풍이 휩쓸고 간 황무지를 보는 듯한 적막함, 그 기분이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보는 것과 같이 미국이라는 땅의 역사 조각일 이 책. 우리나라는 아메리카드림이라는 일종의 미국 동경심과 같은 것을 가진 사람이 많다. 나는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 분류에 포함될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결국 그들도 우리 대한민국과 같이 아픔을 겪은 '나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요소를 통하여 주인공이 보는 그들의 세상에 더욱 몰입, 공감할 수 있었다. 앞으로가 막막하던 사람들과 톰 조드가 어떻게 이 책의 이야기를 마무리할지 궁금하다. 

[파리대왕]을 읽고

이미지
어린 소년들은 외딴 산호섬에 불시착하여 고립되는 상황에 처한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를 뽑아야 했고 조금 유별나 보였던 '랠프'라는 소년이 선출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아이들이 그에게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았다. 성가대원의 대장이었던 '잭'은 랠프를 리더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한 분열의 상황에서 그들은 먹고 살아남아야 했기에 멧돼지를 사냥한다. 피 맛을 본 소년들은 점점 기괴해져가며 살육을 자행한다. 제일 현명하게 행동하던 '돼지'도 잭에 의해 죽게 되고 그들은 미쳐갔다. 우리들은 대게 어린 소년 소녀들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를 먹으며 그 순수함을 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타락함을 느꼈다. 아이들은 구조의 가망이 점점 낮아지면서 두려움이 커지게 되고 그것은 곧 살기로 심화한다.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악한 본성만이 그들을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상태가 된다. 사람이 정말 극한의 상황에 놓이면 끝을 보여주는구나를 몸소 느꼈다. 영화 소개 같은 영상에서 성인들끼리 무인도에 고립되어 이런 끔찍한 결말을 보여주는 건 봤지만, 아이들도 결국 똑같다는 걸 보자 '어린 소년들의 모험담을 통해 인간 본성의 결함에서 사회 결함의 근원을 찾아내는 (이하 생략)'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작품은 '사회의 결함'에서 비롯된 인간 악의 끝을 보여주는 명작이라 가히 말할 만하다. 소년 랠프는 죽음의 끝에 이르는 순간 어른에게 구조된다. 고립된 아이들은 불가피한 정치를 해야 했고 서로 은근한 서열을 매기며 점점 본성이 드러난다. 이런 정신 나간 환경에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저 아이들이 잘못 자라 이런 일을 일으킨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중학교 1학년 때 배운 성악설이 날 다시금 고민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Holes를 읽고

이미지
 Holes는 학교에서 번역본을 읽고 재밌어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다. 주인공 스탠리는 억울한 누명을 써서 땅을 파는 캠프장에 간다. 사실 그의 누명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벗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부모님의 경제적 능력 때문에 억울한 전과가 생긴다. 이 소년의 이러한 불행은 그의 조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고조할아버지로부터 어떻게 이 집안의 저주가 시작되었는지 전개된다. 이야기는 사실 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스탠리의 캠프 생활과 저주의 유래 두 사건이 교차적으로 진행되어 굉장히 흥미진진하였다. 그리고 캠프에서의 수련을 통하여 스탠리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된다. 나처럼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에게 '땅 파기(dig) 캠프'에서 몇 개월 동안 지내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가는 것도 아니고 누명이라니..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스탠리는 오히려 낙천적이고 도전적인 태도를 보인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다들 입에 부정적인 말들을 달고 살아서 그런지 사실상 저런 최악의 상황에서 긍정적인 태도는 오히려 따돌림 당하기 쉬운 대상이다. 나는 스탠리의 그런 태도를 보며 내가 평소에 얼마나 부정적이고, 끈기 없는지 느꼈다. 스탠리의 그런 낙천적인 성격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평소엔 긍정왕이지만, 비참한 상황 속에서는 힘없이 추락한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굉장히 깐깐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스탠리처럼 그런 때일 수록 더더욱 강해지고 긍정적인 생각이 날 성장하고 견디고 이겨내게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많은 힘겨운 상황이 날 기다리고 있을 텐데, 절대 절망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며 그로써 내 정신적 육체적 소양을 기르는 경험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역시 베스트셀러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이었다.

희곡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을 읽고

이미지
주인공 강태국은 동네의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인물이다. 물질적인 가치를 우선으로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의 세탁소에 돈과 재산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 마음을 정화시키는 게 그의 일 중 하나이다. 나는 읽으면서 작가가 단순히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현대의 사회적인 문제를 강태국과 세탁소를 통해 풍자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읽으면서 왜 세탁소의 이름이 '오아시스'인지 알게 되었다. 물 한 방울 찾아보기 힘든 사막에서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 오아시스를 형성한다. 요즘의 배금주의 사회에서 '오아시스 세탁소'의 강태국 씨처럼 자신의 신념, 그리고 도덕적인 이치를 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은 참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탁소를 찾아오는 인물들 중에는 자신의 천륜마저 저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게 물질만능 주의에 눈이 멀어 제 부모도 제대로 안 챙기는 수준까지 이른 걸까.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게 어른에 대한 예의인데, 배 아파 낳아 주신, 먹이고 키워 주신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한심했다. 다들 돈이 뭐라고 그렇게 눈이 먼 걸까. 본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정말 뭔지 고민이라도 해본 걸까? 그런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주인공 강태국 씨가 정말 바른 사람이란 걸 느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금전적인 여유는 있어야겠지만, 자신의 욕구가 덜 채워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온갖 만행을 저질러서라도 부와 지위를 가지려고 하고, 부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현재 상황에 만족하며 살 수 있다.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사람들의 포커스가 '돈'에 맞춰져 있는 걸 알 수 있다. 본인의 모토가 금전적인 요소를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질만능 주의가 아니라 정말 스스로가 원해서 본인의 역량에 맞게 일하고, 벌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
이미지
이 책의 작가는 내가 구독하는 여행 유튜버의 첫 작품이다. 그녀는 안정적인 전문직을 포기하고 원하는 길을 택한 멋진 사람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영상의 질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고, 영상 제작 측면에서는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올라오는 순간 바로 클릭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사람들이 단순히 예쁜 풍경 때문에 가는 인기 여행지인 뉴욕, 도쿄, 프라하 등과 같은 곳보다 그녀는 인도, 이집트 피라미드, 에티오피아, 사하라 사막, 우유니 사막과 같은 어드벤처한 여행지를 주로 간다. 때문에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여행지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녀가 여행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랜선 여행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나도 아빠 덕분에 나이에 비하면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다. 어쩌면 한창 여행을 즐길 20대들보다 더 많은 나라를 여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로 유명한 여행지를 다녔다. 난 겁이 많아서 인도나 에티오피아 같은 위험한 곳은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이란 타이틀에는 언제나 호기심도 따라오는 법이다. 그녀가 정말 멋져 보였다. 보통의 사람들이 원하는 안정적인 전문직이라는 엄청난 꿈을 내려놓고 원하는 일을 좇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받아들여진다. 어릴 때만 해도 우리는 학교에서 물질적인 사람이 되지 말자, 본인이 진정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왔고 그게 곧 가치관이 되었다. 그러나 20대 언니 오빠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는 얘기가 "취업 잘 되고 돈 많이 버는 직장 가지는 게 최고" 이다. 돈과 행복 두 마리 토끼는 커녕 한 마리도 쉽게 못 잡는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고단한 직장에서 벗어나 이 사람처럼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게 가능하다. 그들은 단지 자기의 부와 재산의 여유를 원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어떤 친구가 나에게 "난 돈...

우물 안 개구리

며칠 전 엄마와 크게 다퉜다. 아주 사소한 걸로 시작해서. 사실 잘못한 쪽은 나였는데 너무 화난 나머지 필터링 없이 머릿속에 있는 말들을 그대로 내뱉었고, 엄마에게 상처를 줬다. 이왕 일이 커진 거, 집에서 자기가 싫었고 더 말썽을 피우고 싶었다. 그래서 내 발이 향한 곳은 할머니 집이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언니가 엄마랑 이미 연락을 한 후였고, 난 엄마에게서 받을 온갖 욕을 언니에게 받았다. 할 말은 없었지만 엄마가 이 일을 다 말했다는 게 황당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 때 느꼈다. '아, 내가 부끄러운 행동을 했구나. 이런 일을 언니가 알게 된 것이 수치스럽다는 건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이지.' 난 내가 철이 빨리 든 줄 알았다. 남들보다는 성숙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난 그저 우물 안 개구리였다. 우물 속에서 푸른 하늘을 쳐다보는 것밖에 못하는 개구리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다. 엄마가 내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라고 했다. 정말, 새삼 내 지난 행동들이 너무 부끄러웠다. 어떤 이상한 착각에 빠져서는 스스로가 철들었다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부모님께 하는 행동이 고작 그 정도였다니... 그날 밤, 언니의 반 강제적인 명령으로 언니 노트북에 마음을 정리하는 글을 썼다. 사건의 발단부터 뉘우침, 그리고 다짐까지. 사실 전에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내게 다짐하라고 했을 때, 다짐한 건 내가 아니라 내 입이었다. 앞에선 정말 그럴듯하게 대답하고, 정말 그럴 것처럼 행동하면서 실제로 등을 돌리는 순간부터 난 내가 한 다짐을 잊었다. 그러다 보니 내게 실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장 제일 가까운 내 동생이 내게 늘상 하는 말이 "누나는 어차피 이렇게 말해도 안 바뀔 거잖아."라니. 정말,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지하철 1호선에 유독 많다던 이상한 사람들.. 그런 얘길 들으면 '참 세상에 정상적인 사람은 몇 안되는 거 같다.' 라고 속으로 ...

[7일간의 리셋]을 읽고

이미지
이 이야기는 페이지라는 소녀가 열차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졌는데, 죽기 전 영혼이 잠시 머무는 공간에서 만난 아이의 말을 듣고 죽기 전 했던 후회되는 일을 생각한다. 그 아이는 페이지에게 7일이라는 다시 살아볼 시간을 주고, 페이지는 새로운 7일로 자신을 바꿔나가는 스토리다. 내게 7일이란 시간이 주어지면 어떨까? 페이지처럼 막상 죽음의 문턱까지 갈 뻔 했다면 나에겐 일주일도 너무 짧게 느껴질 것 같다. 지금 당장도 바꾸고 싶은 건 많으니까. 페이지는 전과는 다른 선택으로 인해 또 다른 결과를 이끌어오는 경험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미처 몰랐던 소중함, 놓치고 있던 것들을 보게 된다. 페이지의 살아 생전 태도와 7일이 주어진 뒤의 태도가 극변하자 내가 저럴 수 있을지 상상해 봤다. 사실 페이지는 죽을 뻔했기 때문에 주어진 7일이 정말 소중했을 것 같다. 나도 하루 하루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요새 코로나 때문에 너무 늘어지게 되고, 매일 매일을 후회하는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려면 어느 정도 필요한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 뭘 하며 보내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그걸 실행에 옮길 끈기력과 열정이 있어야 하며, 무조건 퀘스트를 올 클리어하지 못하더라도 뿌듯함 정도의 만족은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내가 말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이 내 마지막 하루라고 생각하면 정말 이렇게 오늘을 마무리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몸과 정신이 따로 논다. 페이지의 행동이 뭔가 멈출 생각을 안 하고 퍼질러져 있던 내 생활습관에 영향을 준 것 같다. 어제부터 다시 일상생활 루틴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렇게 책 속의 인물로 인해 내 실제 생활이 바뀐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작가에게 고마워하기보단 페이지에게 고맙다고 해야겠지? 나처럼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정신 못 차리고 놀고만 있는 십대 학생들에게, 지금 이 순간을 기회로 여기고 평소에 못해 본 다양...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읽고

이미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제목이 사람을 끌어드리는 것, 이게 에세이의 대표적 장점 중 하나다. 보통 에세이라 하면 막연하고 흔한 얘기들이 생각난다. 뭐, 아닌 사람도 많겠지만 난 에세이라 하면 다 똑같은 얘기에 표지만 다른 책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이 책은 별로 그런 느낌이 없었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삶을 자연스럽게 연상시켰다. 갖가지 제목들 중 눈에 띄었던 이름, '인생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것.' 짦은 내용이라 흘려 보다 정신이 똑바로 들었다. 누구나 공감할 법한 얘기. 하지만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 에세이를 거의 기피하다시피 하는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난 정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이 작가가 누군진 몰라도 밥줄을 위해 써내려간 책, 10만 명이 봐도 9만명은 위로받을 책을 읽으면서 코끝이 찡해진 게 참 서글퍼졌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인생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지만 난 주위를 과다 인식하는 사람 중 하나다. 지나치게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에 신경쓰고, 상처받고를 반복하며 살았다. 안 좋은 성격임을 알고 있음에도 바보처럼 사소한 한마디에 하루를 꼬박 샌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내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나름 빵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약점이 너무 많은 나였다. 그런 나에게 통쾌하게 한 마디 날려주는 글을 읽을 때마다 속이 시원해졌다. 그 외의 어른들을 위한 글들도 인상깊었다. 밥벌이 때문에 '을'이 되어 버린 사회초년생 20대들. 어릴 때는 불의를 못 참는 정의로운 사람이 될 줄 알았던 그들도 결국 스스로가 먼저인 평범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에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 사회와 타인이 바라는 모습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말. 그 프레임이 사람을 너무 옥죄고 있진 않았나? 무엇이 정의인지 불의인지를 떠나서 자신의 삶에 자유로움을 ...

[울 엄마의 마지막 선물]을 읽고

이미지
가람이는 엄마에게 열한 살 생일 선물로 핸드폰을 받았다. 그 핸드폰은 암과 싸우다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가람에게는 아주 큰 의미가 담긴 물건이었다. 비록 오래된 고물 핸드폰일지라도 그 속에 담긴 엄마의 모습을 보며 가람은 슬픔을 극복한다. 어린 나이에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존재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작은 소년에게 너무 가혹했다. 실제로 내 주위에는 부모님 중 한 분을 잃은 사람이 드물다. 어쩌면 그들이 숨기는 걸지도 모르지만. 저런 고통을 일찍이 경험한 아이들은 바로 그 당시 느꼈던 슬픔을 다 털어낼 즈음에는 많이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주위의 몇몇 어른스러운 친구들을 보면 자연스레 '어떤 경험을 했길래 이 친구가 이렇게 성숙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추락하는 친구도 한 명 있었다. 처음 딱 그 애를 봤을 때 든 생각은.. 왜 저러지? 였다. 스스로를 어른스럽다는 타이틀에 맞추기 위해 애쓰려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건 걔에겐 일종의 자기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인생 중 가장 컸던 사건'에 대한 학교 글쓰기 행사 때문에 우연히 그 애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었는데, 걔가 왜 그렇게 까탈스럽고 세상 만사 다 안다는 식으로 행동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솔직히 '공감되었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어쨌든 그 글만으로 걔의 정서에 이입하긴 힘들었고 직접 듣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100% 이해하기는 어려운 게 당연하니까. 내 16년 인생에도 참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는데 어쩔 때 울면서 주위에 내 일에 대해 말해도, (물론 난 그 상대방이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길 바라며 말을 꺼냈음) 대부분 시시껄렁한 반응이었다. 어떨 땐 정말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만 끄덕이며 격렬하게 지루하다는 표현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럿에게 그런 반응을 보게 되었을 때 깨달은 것이 있다. 어떤 슬픈, 기쁜, 무서운, 놀라운 ...

[어린 왕자]를 읽고

이미지
어린 왕자는 이름은 유년기부터 귀 아프게 들어온 필독 도서였지만 이제서야 제대로 자세히 읽어보게 되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임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세한 내용은 모를 것이다. 가장 알려져 있는 이미지는 아마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일 것이다. 앞서 말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 보겠다. 어린왕자가 그린 보아뱀을 본 어른들은 하나같이 저건 '모자'잖아. 라고 입을 모았다. 어린왕자는 매번 보아뱀이라고 설명해 줘야 했다. 앞부분에 나온 이 보아뱀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어쩌면 '어린왕자'에 대한 전체적인 요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른들과 순수한 아이들의 눈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을 메인으로 다루는 이 책은, 어린이 권장도서를 넘어서 어른들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이 되어야 할 수도 있다. 뒷부분에는 어린왕자가 주인공에게 여우와의 일을 말해 준다. 흔히 '길들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야생 동물과 같이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동물들이 반려화되는 생각을 떠올린다. 그러나 여우가 말하는 '길들이다'는 조금 다른 뜻이었다.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여우가 말했다. -{어린왕자} 중에- 여우는 어린왕자가 자기를 길들여주길 바랬고 둘은 친구가 되었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많은 얘기를 해 주었고, 어린왕자는 여우에게서 많은 걸 배운 듯했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어린왕자는 여우와 헤어지고 전철수를 만난다. 전철수는 아이들은 행복하군, 이라고 말한다. 왜 아이들은 행복하다고 말했을까? 그 말은 그가 행복하지 않음을 돌려 말하는 듯했다. 어린왕자가 앞서 말한 것은 "어린아이들...

[체호프 단편선]을 읽고 3

이미지
<거울> 넬리는 끔직히 사랑하는 자신의 남편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둘은 부부고 한날 한시에 같이 눈을 감을 순 없다는 걸 그녀도 알았다. 아마 뒷부분에 나오는 묘사로 보아 제목은 그녀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을 의미하는 것 같다. '내가 잠이 들었었나 보지..'라며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남편을 이토록 사랑하고, 그가 죽는 모습을 지켜만 보는 넬리가 너무 안타까웠다. 거울과 같이 한 걸음 물러서 나 자신을 지켜보면서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하지? 라고 한다. 그녀에게 사랑과 결혼 생활은 인생의 전부였고 촛농이 아슬아슬 흘러내리다가 결국 불이 꺼진 것처럼 그녀의 세상이 무너졌다. 어쩌면 그런 그녀가 결혼 생활에 얽매여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생각하는 억압과 같은 얽매임이 아니라 스스로가 한 모퉁이에 너무나 의지하며 살아왔기에, 불씨가 꺼지는 순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관은 내 정신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핵과 같은 존재여서 컨트롤하기란 어렵다. 그녀 역시 자신의 전부를 사랑에 쏟는 것보단 스스로를 사랑하고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던 이유가 그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지금 같은 시기엔 더더욱, 스스로를 압박하고 자책하는 중이진 않는지 한 번쯤은 비춰봐야 할 필요가 있다. 조금 더 편안하게 느슨하게 삶을 즐기라고 하고 싶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매 순간을 즐기면서. 과거의 행복을 붙들고 버티며 아슬아슬 살아가는 것보단 앞으로의 행복을 찾아갔으면 한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항상 반복되는 일상에 어떠한 변화를 줄지, 매일 고단한 하루를 어떤 식으로 생기있게 만들지 고민해볼 시간은 많으니까. 많은 사회인들이 하루가 끝나면 이런 사소한 생각도 할 틈 없이 피곤에 쩔어 잠을 잔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 이 이야기처럼 '거울' 밖에서 본인의 모습을 비춰 보며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다. 옛날 고전 시대 작가...

[체호프 단편선]을 읽고 2

이미지
이번에는 '베짱이'를 읽어 봤다. 베짱이는 읽을 수록 왜 체호프의 단편집들이 유명한지를 알게 되었다. 짧은 몇 장 안에 이야기를 다 담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베짱이'는 바람에 관한 이야기인데 주인공인 이바노브나는 젊잖고 명석한 남편이 있지만 예술과 사교 모임을 즐기며 사는 그녀와는 너무 다른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지쳐간다. 그러면서 얼떨껼에 한 화가와 바람이 나고, 본인의 잘못을 자각하고 뉘우치면서도 그에게 느끼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 '바람'이라는 주제를 다룬 것을 보아하니 고전소설치곤 정말로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책으로 보였다. 사실 바람핀다는 것은, 그것도 연인이 아닌 부부 사이의 바람은 더더욱 용납될 수 없는 문제이다. 며칠 전 우연히 한 드라마의 클립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 역시 부부 심리상담전문의로 보이는 한 여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어떤 부부의 이야기였다. 내용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바람 맞은 아내는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자라면 그런 실수는 한 번 정도 있는 게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사실 처음 그 말을 들으면서 잠시 '남자들은 그런 건가? 결혼 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은 그런 실수가 용서되는 게 보편적인 건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경우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게 바람피는 거라고 생각한다. '연인이 서로에게 설레는 감정을 평생 안고 살 수는 없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 봤다. 물론 그렇기에 자식들로 가정 체계가 끈끈해지는 것일 테고 언젠가부터는 서로가 정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말도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이란 것이 가슴이 콩닥거리고 떨리는 감정만으로 정의될 순 없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친구와 친구 간의 사랑, 스승과 제자 간의 사랑, 애완 동물과 주인 간의 사랑 또 형제나 자매 간의 사랑 등 세상엔 정말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다. 사람들은 결코 아내와...

[체호프 단편선]을 읽고 1

이미지
아직 몇 안 읽은 목차 중 맨 앞의 <관리의 죽음>은 내게 헛웃음을 유발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주인공 체르뱌코프가 오페라 극장에서 장군의 뒷통수에 대고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생긴 아주 사소한 문제로 바보 같은 사과를 반복하는 내용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부서는 아니지만 높은 직급의 장군에게 무례를 범한 것이 상당히 폐라고 느낀 듯 했지만, 그의 계속되는 사과는 장군과 나를 포함한 보는 이들에겐 우습고 답답한 행동이었다. 흔히 지금의 사회에서 '눈치 없는 놈'으로 불리기 적합한 체르뱌코프. 사실 저런 성격의 사람들은 가끔 가다 한 두 명씩 있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뭔 생각으로 저렇게 철없이 굴까.. 생각했는데 체르뱌코프를 보니 그저 두 사람 간의 오해였을 것 같기도 했다. 사람 간의 오해는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 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다. 나도 항상 인간관계로 힘들 때마다 주된 원인이 오해였던 적이 많다. 오해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자존심이 세서 쉽게 미안하다는 말이 잘 안 나오는 성격이다. 고치고 싶은 성격 중 하나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자존심 세우는 행동은 정말 평생 후회할 일인 것 같다. 주위의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어서 화해하기! 그리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기는 필수다. 체르뱌코프가 장군의 입장이 되어봤을 때 '아, 내가 너무 귀찮게 한 건가? 이제 더 이상 사과하면 더 실례이겠다.'라고 생각하기만 했다면 마지막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두 가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다면 사람 간의 오해는 쉽게 커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의 내용처럼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말을 안 해주면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답답하기만 할 뿐. 장군처럼 저렇게 화만 내는 것보다 "나는 별로 신경 안 쓰여요. 벌써 다 잊었는걸요."라고만 해 줘도 끝날 일인데. 아마 장군 때문에 내가 그렇게 ...

Memento를 감상하고

이미지
이십 여 년이나 지난 오래된 이 영화는 이렇게 한참 뒤에 봐도 전혀 이상하거나 구식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놀란 감독의 영화는 내게 매번 적응되지 않는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아주 매력적인 영화들, <인터스텔라>, <인셉션> 등.. 메멘토는 위의 두 영화와는 조금 달랐다. 감동보다는 충격의 비중이 극도로 컸다. 주인공의 감정 묘사와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가 부딪히며 비교적 몰입이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영화를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던 건 주연 배우의 연기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의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병, 20분도 채 안 돼서 이전 일을 잊어버리는 그 몹쓸 병은 실제로 존재하는 병이 아니라는 말을 듣기 전까진 진짜로 너무 끔찍한 병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존재했다면 그것은 죽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후반부에서 주인공에게 사실직고를 하는 테디를 보며 아, 이제 이 고구마 같던 상황이 풀리겠거니 했지만 레너드의 행동은 충격 그 자체였다. 처음에 난 그의 그런 태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말로 이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모든 사실이 밝혀지는 상황이었음에도 어차피 레너드의 기억은 곧 리셋되니 결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가 죽을 때까지 똑같은 상황 속에 갇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나라면 당장이라도 죽고 싶을 텐데. 그 몸뚱아리는 자아가 없는 빈 껍데기일 뿐, 복수심으로 가득 차 숨막힌 하루를 살아가는 그를 보며 정말 가슴이 짠했다. 테디가 진실을 알려주었을 때 자기 몸에 새긴 문신과는 얘기가 맞아떨어지질 않으니, 설령 맞다 한들 레너드의 정신, 상태로는 감당하기 어려웠겠지. 충격을 흡수하기엔 그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으니까. 정말 머리가 복잡해 죽을 뻔한 영화였지만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코드로 만든 영화 중에서는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두뇌게임이나 머리 웜업하고 싶을 때 보면 좋을 영화다.

[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를 읽고

이미지
주인공은 신기하게도 한국계 미국인이다. 라라 진, 그녀는 두 명의 자매와 의사 아버지와 살고 있다. 하지만 어릴 적 어머니를 잃은 세 자매는 항상 엄마를 그리워했다. 그래도 그녀에겐 멋진 언니 마고가 있었다. 엄마처럼 의지하는 하나뿐인 언니 마고에게는 완벽한 남자친구, 조시가 있었다. 라라 진은 그를 몰래 좋아하고 있었다. 난 사실 절친이나 친남매의 애인을 좋아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사랑에 정답이 없다는 말처럼, 내가 누굴 좋아하는 건 스스로 컨트롤되는 게 아니다. 우연찮게 자매가 같은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 결국 언니는 스코틀랜드의 대학으로 떠나며 조시와 이별하게 된다. 항상 멋졌던 마고가 정말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라라 진은 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녀는 귀여운 동생 키티, 너무나 사랑하는 마고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아빠와 살아온 근 십여 년이 정말 좋았지만, 이젠 자신도 사랑에 빠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수많은 사건 사고 끝에 예상치 못한 친구 피터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수많은 사건들, 정말 그들에겐 별 일들이 다 있었다. 사실 그들의 연애도 처음부터 제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라라 진이 위기에 쳐해 피터가 도와주기로 했고, 그 도움이 바로 둘의 계약연애였다. 원래 계약연애라는 타이틀은 이야기의 흐름을 너무 뻔하게 만드는데 이 책 역시 그랬다. 그러나 하이틴 그것도 미국 하이틴 소설을 처음 접한 내게는 이런 뻔한 스토리가 환상이 되어 버렸다. 티격태격대면서도 점점 서로에게 빠지고, 결국 진심이 닿아 사랑하게 되는 한 십대 연인은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에겐 판타지이자 로망이겠지? 나에게 큰 감동과 영향을 주었던 또 다른 영화, 노트북. 그 영화는 진정한 사랑, 어른들의 사랑이라고 매기면 이 책은 십대의 귀엽고 설렌다고 해야 할까? 항상 성장소설, 스릴러 소설, 단편집 같은 책만 읽다가 로맨스를 보니까 감회가 정말 새로웠다. 내가 십대라 그...

[관계의 온도]를 읽고 2

이미지
수 채연은 초등학생 때 만난 수를 본지 꽤 오래 되어 기억이 흐릿하게 났던 터라 건너편에 앉은 남자애가 수인지 아닌지 헷갈려 했다. 채연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편도 아닌 숫기없는 아이였고 수는 모두들 무서워하는 아이였다. 채연이는 명석한 학생이지만 좋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빚을 져 명문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그에 반면, 수는 자신이 진정 해야 할 일을 발견해 학교 밖 목공소에서 나무를 다듬는 일을 배우는 중이다. 초등학생 때 채연은 수가 얼굴에 흉터가 있고 조금 괴팍한 성격의 아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달팽이 사건 이후로는 조금 더 따듯한 애라고 느꼈을 테다. 그래도 늘 사건사고의 중심에 있었던 수가 고등학생이 되어 마주했을 때 자기보다 한참은 성장한 커다란 나무가 되어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채연이 학교를 재치고 수와 밥을 먹고, 목공소에 가서 나무도 만져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는 머릿속에 그려졌다. 부러웠을 것이다. 아픈 동생을 가진 그녀는 자연스래 의사라는 꿈의 딱지가 붙여졌다. 채연은 의사라는 그 꿈이 자신의 꿈인지, 아님 동생 간호에 지칠 대로 지친 엄마의 꿈인지 혼란스럽고 피곤할 터였을 거다. 그러한 방황기에 딱 수를 만나다니 그녀에게 참 다행인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괴물 취급하는 학교에서 벗어나 재미있는 것을 찾아 그것에 깊이 빠져들고 몰두하며 제 길을 발굴해나가는 수. 학교가 두렵다고 하지만서도 본인이 사랑하는 일을 위해 "부딪쳐 보려고."라고 말하는 수는 내가 채연이라도 멋져 보였을 것이다. 수처럼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그 누구보다 빛이 난다. 주변의 부추김, 분위기에 휩쓸려 원치 않는 일을 위해 힘쏟는 것보다 수의 삶이 훨씬 가치있어 보인다. 원치 않는 길은 절대 나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건 모두들 알고 있겠지? 대한민국의 모든 채연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목표를 단단하게 굳혔으면 좋겠다.

[관계의 온도]를 읽고

이미지
이야기는 한 가족의 집 앞을 서성이는 남중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집의 막내아들인 박진규는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였다. 지긋지긋한 입시에서 벗어나 한 달 동안 펑펑 놀며 시간을 보내던 그는 제일 꼭대기 층인 자신의 집 앞에서 교복에 후드티를 입은 남학생을 마주한다. 당황했지만 처음 보는 남학생한테 뭘 물어볼 수도 없었던 그는 그냥 지나쳐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계속해서 그 남학생을 마주치게 되면서 점점 그 아이의 정체가 궁금해지게 된다. 박진규에겐 어렸을 때의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영우는 진규에게 소중한 친구였다. 비록 중학교를 다른 곳으로 배정받은 뒤로는 연락도 끊기고 자기와 놀지 않아 멀어졌지만 둘은 초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였다. 늘 자기 집에 초대해 놀던 친구가 진규를 모른 척 하자 정말 섭섭했을 거다. 그런 영우가 갑자기 진규에게 급하다며 집으로 오라는 문자 메세지를 보냈고, 진규는 반가운 마음에 한 걸음에 달려갔지만 그를 마주한 것은 너무나 작아져버린 영우였다. 영우는 다른 아이들에게 정도가 심한 괴롭힘을 당하는 중이었고 그들에게 협박을 당한 진규는 그 상황을 외면하게 되었다. 며칠이 지난 뒤 영우의 자살 소식은 온 동네를 휩쓸었다. 영우가 남긴 유언장에 진규가 없었고, 그 사실은 왜인지 박진규를 안심시켰다. 박진규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가며 방화구 뒤로 숨은 소년을 마주치면서 영우가 방화구 속으로 일진들로부터 도망친 순간이 생각나 괴로워한다. 그가 영우를 외면한 것과 박진규의 가족들이 의문의 남학생을 유령 취급한 것은 비슷한 맥락의 결말을 낳았다. 집 앞에 앉아있던 소년에게 왜 음료수 하나 건네주지 못했을까. 진규와 영우, 그리고 박씨네 가족과 의문의 소년의 관계는 깨끗할 정도로 별 거 없지만 그들은 분명 서로에 대해 많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궁금해했을 거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인물들 사이의 갈등과 시끄러운 침묵을 느꼈다. 좋은 관계가 의무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꼬인 관계는 그냥 두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이미지
저자는 신경정신과 의사라고 한다. 이 책의 첫 시작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글이다. 책에는 자신이 본 임상사례에 관한 글이 몇 있었다. 그 사례들은 볼수록 특이했다.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글을 읽다 보니 책을 쥐고 있는 내 손이 낯설게 느껴졌다. 상대의 얼굴이 형이상학으로 보인다는 것이 무슨 말인 걸까? 일상적인 걸음 속에서 땅에 닿는 내 발이 안 느껴지고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은 도대체 어떨까? 나로서는 상상조차 안 된다. 신경정신과에 관해 일가견이 없는 내게는 이 책이 작가처럼 의학 임상사례에 관한 기록서라기보단, 인식과 존재에 대한 철학서처럼 다가왔다. 현상학이냐 모더니즘이냐 하는 전문 용어들보다는 작가가 본 그대로 써내린 임상사례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내 눈 앞의 장면이 모니터처럼 보이는 것이 도대체 뭘까"와 같은 궁금증을 만드는 책이었다. 평소 장애에 관한 관심도, 배경지식도 없었던 나에게 이 책의 내용들이 특이한 경험을 시켜줬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도 성장하고 적응해나가는 많은 환자들. 그들은 살기 위해 이같이 미칠 듯한 환경에서도 도리가 없었겠지. 적응해나가는 방법 외에는 없었으니까.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어쩌면 지옥일 수도 있었던 그런 곳이었을 거다. 마냥 신기하다는 생각만 들다가 막상 그들의 시각에 나를 대입해보니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그들의 극복에 나는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이 아닌 영감을 얻었다. 영화 '인셉션'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는 그런 곳에서 스스로를 찾아낸 것은 보고 배울 만한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우리가 평범하게 느끼고 인식하는 그 모든 존재들에 대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책이었다.

[그 겨울의 일주일]을 읽고

이미지
배경은 아일랜드의 스토니브리지. 스톤하우스와 인생을 함께한 세자매를 이어받아, 치키는 삶의 제 2막을 연다. 제목부터 따듯함이 느껴지는 이 책은 한 번쯤 넘어져도 괜찮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이 지루하고 모든 게 맘에 안 들던 치키. 이대로 가다간 보수적인 아버지의 손에 떠밀려 늙은 농부와 결혼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그 때, 운명적으로 여행객 남자와 사랑에 빠진 치키. 그녀는 고민 끝에 그를 따라 미국행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그 선택은 도박과도 같았고 어머니의 말대로 진짜 사랑이 그리 서둘러 올 리 없었다. 하지만 치키는 부모님과 언니의 압박으로 본인이 원치 않는 삶을 살진 않았다. 본인의 선택으로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를 따라 나섰고, 낭떠러지 끝에서 방황하며 스스로를 감싸려고 거짓말쟁이도 되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녀는 스톤하우스의 경영자 치키라는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저는 제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나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지. 하지만 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도 정리할 건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p75 치키는 한 때 삐끗했으나, 그때를 자신을 다듬는 계기로 삼아 완성된 성인으로 자랐다. 책이 전반적으로 작가 시점이라서, 치키의 속마음을 알기 힘들었다. 그래도 치키가 나무를 바라보던 젊은 여인에서, 숲을 바라보며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멘토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이처럼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치키의 친구 눌라의 이야기도 나왔는데, 어쩜 인생이 저렇게 안 풀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아들 '리거'가 치키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리거가 '꼴통 그 자체'였던 예전의 모습에서 벗어나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치키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자신의 어릴 시절을 떠올렸을까? 아마 리거에게 그녀를 잘 챙겨준 캐디시 여사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싶었을 것 같다. 스톤하우스는 지배인부터 숙박객,...

[게으름이 습관이 되기 전에]를 읽고

이미지
게으름이라는 습관은 누구에게나 붙어 있는 거머리 같은 존재다. 정말 싫지만, 뗄 수 없는 존재. 나도 게으름이 정말 싫다. 엄마는 항상 나한테 '계획만 번지르르하게 잘 세운다.'고 말한다.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몸과 마음이 합심일체가 되기만 한다면.. 내가 세운 계획들은 손쉽게 풀려나갈텐데. 하지만 오늘 학원에서 선생님이 나한테 비수를 꽂으셨다. 내가 선생님께, "방학이 되니 학원숙제를 자꾸 미루게 돼요. 분명 학원에서는 열정이 불타올랐는데 집에 오면 만사 귀찮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가 공부할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다고 하셨다. 사실 이 책도 마음가짐을 바로잡아주는 책이 아니라 계획세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그러나 모든 건 마음가짐에서 비롯하고, 열정과 의지가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라는 것! 내가 진짜로 무슨 일이든 (학원 숙제든, 독서든, 글쓰기든 뭐든 간에) 할 마음이 있다면 이 책에서 알려준 것처럼 방해 요소를 없애고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휴대폰을 폴더로 바꿀까 고민 중이다. 모두들 게으름 따위에 발목 잡혀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걸 위해 노력하자.

[레몬]을 읽고

이미지
등장인물은 다언, 해언, 한만우, 상희 등의 인물이 나온다.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해언, 그녀의 동생인 다언. 해언이 누군가에게 살인을 당해 세상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몇 명의 용의자 이름이 나오고, 그 중 한명인 한만우도 나온다. 한만우의 어리숙한 말투와 답답한 행동에 나 포함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가 실수로 살인했을 거라고 예상할 수도 있다. 뭐, 난 읽다 말아서 결말을 모르니까. 만우는 해언을 본 순간 그녀의 착의상태를 말하면서 점점 더 의심받게 된다. 반바지에 반팔? 왜 만우는 그 발언으로 더 의심받았나? 해언이 여성이고, 연약하며 비교적 약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단지 아름답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영악하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정복당하고 사회로부터 강제적인 압박을 받는 게 과연 정당하냐는 질문. 작가는 다언의 입을 빌려 모두에게 묻고 있다. 아버지를 잃은 그녀는 속옷을 입지 않은 차림으로 소파에 다리를 벌리고 앉는단 이유로 엄마에게 여러 번 꾸짖음을 당하면서도 자신을 보호하는 것에 무심한 아이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런 그녀를 챙긴 것은 다름아닌 동생 다언이었다. 그런 그녀의 삶은 언니를 잃은 뒤로 송두리째 달라졌다. 온갖 성형시술을 받고, 몸은 어째선지 삐쩍 말라 뼈 뿐이고 남들에게 너무나도 차가웠다. 승희와 다언이 카페에서 대화하는 부분에서 다언의 태도는 그녀의 과거와는 크게 대조되어 보였다. 이사를 간 뒤, 다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마치 물 속의 먹물처럼, 하나의 변화는 중심과 연결되어 있는 그 모든 것에 퍼져나간다. 마치 뼛대처럼 자라난 그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친다. 어둡게 물들인다. 죽음과 삶, 그 경계. 해언의 죽음 언저리에 있던 모든 인물들은 그 곳에서 어디로도 못 가고 갇혀 있다. 그들의 추락한 인생은 누구 탓을 해야 할까? 그들이 허공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