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를 감상하고

이십 여 년이나 지난 오래된 이 영화는 이렇게 한참 뒤에 봐도 전혀 이상하거나 구식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놀란 감독의 영화는 내게 매번 적응되지 않는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아주 매력적인 영화들, <인터스텔라>, <인셉션> 등..
메멘토는 위의 두 영화와는 조금 달랐다. 감동보다는 충격의 비중이 극도로 컸다.
주인공의 감정 묘사와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가 부딪히며 비교적 몰입이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영화를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던 건 주연 배우의 연기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의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병, 20분도 채 안 돼서 이전 일을 잊어버리는 그 몹쓸 병은 실제로 존재하는 병이 아니라는 말을 듣기 전까진 진짜로 너무 끔찍한 병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존재했다면 그것은 죽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후반부에서 주인공에게 사실직고를 하는 테디를 보며 아, 이제 이 고구마 같던 상황이 풀리겠거니 했지만 레너드의 행동은 충격 그 자체였다.

처음에 난 그의 그런 태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말로 이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모든 사실이 밝혀지는 상황이었음에도 어차피 레너드의 기억은 곧 리셋되니 결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가 죽을 때까지 똑같은 상황 속에 갇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나라면 당장이라도 죽고 싶을 텐데. 그 몸뚱아리는 자아가 없는 빈 껍데기일 뿐, 복수심으로 가득 차 숨막힌 하루를 살아가는 그를 보며 정말 가슴이 짠했다.
테디가 진실을 알려주었을 때 자기 몸에 새긴 문신과는 얘기가 맞아떨어지질 않으니, 설령 맞다 한들 레너드의 정신, 상태로는 감당하기 어려웠겠지. 충격을 흡수하기엔 그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으니까.
정말 머리가 복잡해 죽을 뻔한 영화였지만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코드로 만든 영화 중에서는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두뇌게임이나 머리 웜업하고 싶을 때 보면 좋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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