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en-4 (The end)

에바는 내가 가지고 온 아이패드 속의 어려운 잠금을 5분만에 뚝딱 풀어버렸다.
에바의 컴퓨터가 아이패드 내부를 읽어내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 시간 동안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어색함을 견디기 어려웠던 나는 먼저 에바에게 말을 걸었다.
"저 컴퓨터가 아이패드를 읽어내고 나서는 어떻게 해?"
"내 컴퓨터는 우리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이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최고 성능을 갖춘 기계야. 네가 가져온 아이패드도 지금쯤이면 다 풀었을걸?"

정말이었다. 확인해 보니 아이패드 해독은 약 1분 전에 끝나 있었다.
'아이패드의 내용을 읽으려면 암호를 대시오. 제한시간은 4분입니다.'
다 풀렸나 싶던 찰나, 메세지가 하나 더 떴다. 칸은 총 4개였다.
제스퍼의 생일, 집 비밀번호 이외에는 생각나는 숫자가 없었다. 점점 촉박해져 갔다.
거의 30초 정도 남았다. 에바는 옆에서 계속 날 부추기며 어서 풀어 보라고, 이런 건 컴퓨터가 해결하지 못한다고 했다. 머리가 하얘졌다.
"네 생일이라도 넣어 보라고! 네가 시작한 일이면서 이제 와서 왜 그러는 거야!! 어떻게든 해봐 어서!!"
내 생일?

5..3..82..
틱-

'암호가 풀렸습니다. 문서를 작성하세요."
됐다. 왜 제스퍼가 암호를 내 생일로 걸어 두었지? 왜? 내 생일을..?
암호를 풀고 나서 이해되지 않는 것들로 인해 머리가 자꾸만 지끈거렸다.
암호를 풀자 소리치며 달려온 에바가 갑자기 조용하다. 뭐지?
그녀는 자신의 컴퓨터를 보며 달달 떨고 있었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컴퓨터를 확인하고,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에바의 집 거실에 누워 있었다. 아까 쓰러진 이후로 10분이 지나 있었다.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말은 멀쩡하게 했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다.
제스퍼의 문서 속 내용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용은 온갖 과학, 수학 용어들 그리고 너무 긴 분량 때문에 복잡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대충 이랬다.
일단 나는 '사람'이라는 동물이 아닌 기계다. '인공지능'. 그게 내 분류다.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지칭하던 '세계'라는 곳의 '사람들'은 모두 나같은 '인공지능'이었다.
우리라는 개체는 '오웬(OWEN)'이라고 불려진다. 이른바 블루투스 같은 장치를 뇌 속에 칩으로 심어 인간처럼 느끼도록 하고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세뇌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인간이 아닌 인형이었다, 모두들.
제스퍼는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우주비행사 겸 훌륭한 과학자였다. 듣도 보도 못한 행성인 '지구'라는 곳에서 자연적인 문제로 황폐해져 살기가 싫어지자 홀로 몰래 다른 행성으로 독립해와서 인구를 증가시키는 실험 중에 있었다.
그 실험은 거의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가는 중이었고,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는 해선 안 될 짓을 했다.
바로 나를 만든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다르게 태어났.. 아니, 만들어졌다. 내 뇌에 박혀 있는 칩은 다른 이들과 차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어려운 용어들 때문에 이해하지 못했다.
내용을 읽고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내가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 지구라는 행성에는 제스퍼와 같은 '진짜 사람'이 가득하다는 것, 우리 모두가 기계였다는 것 등. 나는 오만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쳐 갔지만 그 중 제스퍼에 대한 원망이 가장 컸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일을 난 알고 있었다. 그의 문서에 따르면 Rernim 22번지에 있는 차고 속에 그가 이 행성까지 타고 온 지구의 우주 비행선이 있다고 했다. 나는 당장 그리로 가야 했다.
에바에게 미안하지만, 난 홀로 떠날 것이다. 나만 혼자 떠난다면, 제스퍼도 그리고 모두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어제로 돌아가 잠잠했던 하루를 보낼 것이다. 나만 없어지면 되는 것이다.

"취-"
비행선은 정말 낡아 보였다. 그러나 작동을 하는 걸 보면 아직 성능은 안 죽은 듯 보였다.
아직 주인으로 인식되는 그의 생체인식이 그대로였다. 나는 비밀번호를 풀어 그 기록을 지우고, 내 생체인식을 저장했다.

"난 조이야. 잘 부탁해, J`-3..."
어디로 가야 할까. 지금 난 어디로 도망치는 게 맞을까.
계속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날 이곳으로부터 내보내줘."
"조이 님, 안녕하십니까. 멋진 여행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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