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en-3]

집으로 돌아와 난 제스퍼를 평소대로 대하려고 연기하는 데 온 기운을 다 쏟았다.
에바가 보여준 책은, 솔직히 딱히 큰 수확이 없었다.
아마, 내가 제스퍼랑 한 집에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거일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내 임무는 지금부터 제스퍼가 집을 비울 때마다 그의 수상함을 하나씩 낱낱이 파헤치고, 에바와 만나서 얘기하며 궁금증을 풀어야 한다.
실은 굳이 친하지도 않았던 에바와 만나서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조금 있었다. 그러나 에바의 1급 성능 컴퓨터 없이 나 혼자 한다면 제스퍼에 대한 정보 수색을 할 때 진전 가능성에 한계가 있다.
에바에 대한 신뢰감이 완전히 형성된 건 아니지만 그녀의 힘이 꼭 필요하다.

제스퍼와의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는 그가 외출할 틈을 노렸다. 예상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쉽사리 나갈 생각을 안 했고, 나 역시 제스퍼의 방을 노렸다. 평소와 달리 자꾸 거실과 방을 드나드는 날 보고 제스퍼는 나에게 한마디했다.
"조이, 무슨 문제 있어? 아까부터 자꾸 왔다갔다 거리네."
"아니에요. 방이 너무 답답해서."
나는 제스퍼가 혹시라도 낌새를 알아버릴까 봐, 그가 집에 있는 동안은 아무 활동도 안 하기로 했다.
그렇게 그 날은 조용히 지나갔다.

자꾸 거슬리는 거실 쪽의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이른 새벽부터 난 눈이 떠졌다. 뭔가 싶어 밖에 나가 보았는데 제스퍼가 거실에 있었다. 무언가 급하게 배낭에 짐을 싸더니, 잠에서 깬 날 발견하고 오늘 저녁 늦게 들어올 거니 집 비우지 말고 잘 지키라며 돈을 주고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너무 정신없어서 5초 정도 얼빠져 있다가 난 오늘 하루는 편하게 그의 방을 뒤질 기회라는 걸 알아차리고선 몸을 움직였다.
잠에서 덜 깬 듯 몸이 무거워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부터 하고, 바로 제스퍼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태 그와 살면서 이 방 안에 들어와본 적은 손에 꼽힌다. 그것도 다 어릴 적 이야기지, 내가 좀 자란 이후로는 제스퍼는 자기 방과 서재가 있는 3층 복도는 얼씬도 못하도록 했다.
생각보다 너무 깨끗하네.
별로 특별하게 눈에 띄는 게 없었다. 침대, 책상, 옷장 그리고 거울. 끝이었다.
난 나도 모르는 새에 너무 경계 태세였다. 몸이 너무 움츠러져 있고 방엔 발끝도 안 들어가져 있는 걸 알아차리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방에 들어가보지도 않고선 너무 단정지었네."

조심스래 방의 불을 키고, 들어가자마자 주위를 사악 스캔했다.
그런데 불을 켜도 별다를 게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평범 그 자체였다. 난 10분 동안 방 주위를 샅샅히 뒤졌다.
'어쩜 나오는 게 하나도 없니. 너무 헡짚었나... 사실은 제스퍼도 그냥 평범한 사람일지도 몰라.'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데 갑자기 뇌세포에서 목이 마르다는 신호를 보냈다.
물이라도 마시고 다시 해보자는 생각을 하며 방에서 나가려고 문 손잡이를 잡는데 손에 뭔가 차가운 게 닿으면서 "찰캉-"하는 소리가 났다.
손에 닿은 건 열쇠였다. 열쇠를 보자마자 난 화장실로 달려갔다. 역시, 내 감은 틀린 적이 없다니까.
드디어 화장실의 환풍기 뚜껑을 열어 볼 수 있겠구나. 위로 올라가는 무슨 통로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환풍기의 뚜껑을 여는데, 이런...... 이런, 이런..!!!!! 내가 너무 성급했다..!!!!!!!

환풍기 속에선 얇은 아이패드 하나가 나왔다. 내 실수였다. 너무 급하게 뚜껑을 뜯어서 내 얼굴만한 아이패드는 그대로 변기로 퐁당 하고 빠졌다.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꽥 질렀다.
잠시 멈칫했으나 바로 손을 집어넣어 아이패드를 변기에서 꺼냈다. 다행히 금가거나 깨진 건 없어 보였으나.. 아이패드 속으로 변깃물이 찬 건 정말 확실해 보였다. 찌린내 나는 아이패드를 어떻게든 닦아서 내 방에 갖다 두었다. 일단 급한 대로 화장실과 제스퍼의 방을 정리했다.
환풍기 뚜껑도 다시 닫아두고, 열쇠도 제자리에 두었다. 제스퍼가 눈치를 너무 빨리 챌 걸 감안해서 환풍기에서 나온 것과 똑같은 기종인 내 아이패드를 그 자리에 두고 난 바로 내 방으로 달려갔다.

아이패드는 다행히도 켜졌다. 오줌 찌린내가 나는 것 외엔 정상이었다. 그 오줌 찌린내 때문에 데미지가 좀 컸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 건졌다는 것에 긴장감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뭔가 술술 풀린다 싶으면 걸림돌이 꼭 하나씩 생겨 줘야 하는 게 원칙인가 보다.
아이패드에 잠금이 걸려 있었다, 그것도 5단으로. 난 교수인 제스퍼 밑에서 자랐기에 다른 이들보다 머리는 조금 더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3단까진 풀었으나... 그 이후론 무슨 이상한 기호로 바뀌어서 손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져 버렸다.

하지만 이미 일은 저질러버렸고, 수습 불가였기에 아이패드를 풀어서 어떻게든 제스퍼가 눈치채기 전에 결과를 내야 한다. 나는 곧장 아이패드를 들고 에바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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