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19의 게시물 표시

[머리부터 천천히]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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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두 가지의 세계가 있다. '어떤 세계', 그리고 '세계'. 이야기의 화자는 '나', 우경 그리고 병준이 회마다 바뀌면서 진행된다. 병준과 우경은 서로가 전 애인 관계이다. 병준이 큰 사고를 당하고, 어떤 세계 속에서 맴돌게 된다. 중환자실 뒤에 있는 세계지도에는, 환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 중 병준의 이름이 적혀 있는 두 점. 부산과 오키나와다. 시간이 뒤섞인 공간인 그곳은 늘 여름이며, 카프카가 흑백 사진 안에서 흑맥주를 마시고 있는 '더블린'이라는 술집이 있고, 중앙동 노천카페에서 두 작가와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시공간이다. 그곳은 대체로 1980~90년 쯤 되어 보인다. '여름의 부산'에서 점점 멀어져 오랜 길을 걸어온 병준은 한 주유소로 들어가고 사물, 동물, 그리고 사람을 차례로 마주하게 되고, 순차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도착한 '어떤 국제'는 사물의 '전구'와, 동물인 '물고기' 그리고 소녀와 대화하는 이상한 형태를 가져 비록 어색하지만 보다 편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다. 부산의 국제시장, 오키나와의 국제거리. 제각기 다른 모습의 국제이지만 병준은 '어떤 국제'를 마치 혜화동 산책하듯 활보한다. 한편 그의 5년 전 애인 우경은 매일같이 병준의 보호자로서 중환자실을 드나든다. 우경은 병준이 오래 전 가족과 연락을 끊은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과도 한참 전에 연락을 멈췄기에 어째서 자신이 보호자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기계를 통해 숨줄만을 붙잡고 있는 병준을 보면서 전처럼 큰 감정은 없으나 아예 없다고는 못 할 미묘한 감정이 교차하게 된다. 우경은 주말에 시간을 내서 병실 내 세계지도에 병준의 이름이 찍혀 있는 부산의 달동네부터 가 보기로 한다. 우경은 당최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런 의심 없이 보이는 골목을 들어간다. 이 책은 어렵고 깊은 내...

[나는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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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단 에세이를 많이 찾는 요즘, 자기 계발서를 사들이는 사람이 많아졌다. 누구나 스스로를 완벽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하지만 본인을 싫어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다. 주변 사람들은 잘만 행복하게 사는데, 나만 왜 이럴까. 내가 남들과 뭐가 달라 이렇게 힘든 걸까. 라며 불안해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이러하다. 너무 많은 기대와 상상 탓인지, 내가 잘 할거란 큰 확신 때문인지 자꾸 나의 앞으로의 미래가 불안하고 기대만큼 못 할까 봐 스스로 너무 걱정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 같아서, 또 그 길을 밟아와 놓곤 두고 온 일들에 미련을 둘까 봐. 이리저리 갈대같은 마음 때문에 내가 지금 가고자 하는 길이 정말로 맞는 건지 아직은 확신을 못한다. 그래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나보다 더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잣대질할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나쁜 측면만 바라보고, "아, 현타 온다."며 후회하고. 사실 몰랐다. 내 학교 친구들만 봐도, 다들 너무 잘 살아가는 것 같았다. 세상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 없이 잘 풀리고, 인간관계며 미래에 대한 걱정이며 현재 나의 모습 등에는 만족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난 우울해졌었다. 왜 다들 쉽게 걸어가는 이 길을 난 이렇게 휘청거리는 걸까. 그런데 아니었다. 모두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자기에게 기대를 걸어 만족을 하지 못할까 불안해하긴 다 똑같았다. 이런 에세이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쓴 자기 고백서는 언제나 진실되어 있고 흥미롭다. 자신에게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를 쓴 작가 이영희는 본래 직업이 기자였다. 늘 기사로만 접할 수 있었던 어느 한 기자의 글이, 에세이로 풀어져 보여지는 게 신기했고 아무 것도 모르는 한 사람의 사생활을 몰래 훔쳐보는 거...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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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부분은 [젊잖은 사이],[유일무이],[물속의 당신] 세 편이다. 제일 와닿았던 건 유일무이. 있을 유 자인 줄 알았던 '유'가, 오직 유 자였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오직 유 자에 한 일, 없을 무 자에 두 이. 말 그대로 유일무이, 우리는 왜 오직 하나뿐인가를 생각하게끔 만드는 사자성어다. 선생님 같이 보였던 주인공은 아이들에게 유일무이가 뭔지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자신의 신체를 살피며 자기에게만 있는 점, 자기만의 흰 손가락, 자기만 가진 사마귀 같은 걸 찾아 썼다. 그런데 소수의 아이들 (한 두어 명 정도) 은 색다른 내용을 적어 가져왔다. 자신의 작고 소중하며 유일한 것을 진짜로 적어왔다. 어린 아이들이 이렇게 적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주인공은 감격을 받은 듯했다. 책 속엔 이런 글이 있다. '그 문장들을 읽고 기억하게 되었다. 우리를 고유하게 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타인에게 있다는 걸 말이다. 남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이따금 겨우 특별해지곤 했다. 세계에 오직 나만 있다면 고유성이랄지 유일함이랄지 그런 말들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타인과 맺는 관계에 의해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는데, 그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우리가 어떤 공간에서 하나 뿐인 생물체였다면, 우린 유일무이라는 개념도 몰랐을 것이다. 타인의 어떤 그들만의 고유성 덕분에 우리 또한 유일무이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유일무이해서 뭐가 어떤데?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사실 나도 그랬다. 내가 오직 하나뿐이어봤자 뭐가 어때? 라 할 수 있지만, 주위에 있는 소중한 모든 것들. 나만 꿀 수 있는 깊고 진지하며 현명하고 빛나는 생각들과 꿈. 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는 거다. 저런 멋진 일들을 남들이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 곧 유일무이한 것과 같다. 우린 우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일 수 있다는 것에 감동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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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편이라고 쓰여 있는 걸 미쳐 보지 못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걸 읽었다면 조금은 덜 지루했을까..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졸음이 날 덮쳤다. 이야기는 히틀러와 로마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주 오래 전 유럽의 역사 이야기. 사실대로 말하면 지루하기보단 어렵다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이다. 이번 2학기 중반에 새로 시작하는 역사의 세계사 범위를 조금 더 수월하게 배우고자 하는 마음에, 그리고 약간의 호기심에 꺼내 든 이 책이 이렇게나 어려울 줄은 몰랐다. 그래도 난 오기가 생겨서 1챕터까지는 읽어보자라며 꾸역꾸역 읽어나갔다. 1챕터가 끝나갈때쯤 등장한 '불편함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여유' 부분은 꽤나 재밌었다. 확실히 유럽이나 미주 쪽을 여행해보니 우리나라 사람들과 속도에서 차이나는 게 느껴졌었다. 이 부분을 읽다 보니 내 경험을 글로 써서 머릿속에 박아준 느낌이었다.  너무 맞는 이야기였다. 내가 여유를 허용하기 시작한다면, 사회로부터 돌아오는 여유는 결국 나의 느림, 여유로움을 이해받을 수 있게 됌이란 것. 그건 여유로운 국가들의 사회에서 암묵적인 약속이며 그들이 살아가는 삶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 존재다. 내가 이번 미국•캐나다 여행에서 크게 느꼈던 그들의 삶의 방식이었던 '여유로움'. 왜 미국을 떠올릴 때 자유로운 국가라는 코드가 뒤따라오는지 쉽게 이해시켜준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살아볼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