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너와 나의 비밀]을 읽고

 우리의 주인공, 그림 그리는 아이 멜리사.
그리고 세 살짜리 동생 코디과 담배에 의지하며 사는 엄마, 이렇게 세 명. 화목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최악의 가족이었다. 여름 휴가로 캐나다의 한 통나무집을 가기 전까지는.

 멜리사는 이번 여름엔 꼭 미술 캠프를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결국 별난 엄마의 손에 이끌려 호숫가가 있는 잔잔한 동네로 여름 휴가를 가게 된다.
통나무집 주인인 템플턴 선생님은 "이웃 중 호프 가족이 유별나니, 친하게 지내는 건 힘들 거다"라고 충고하셨다. 그러나 멜리사는 앨리스와 친구가 되었다.

 앨리스는 아주 특이한 아이였다.
섬 속 다르윈드에서 책 읽고 소설 쓰기를 즐기는 앨리스. 그녀의 소설, 그것만큼은 엄지 두 개를 치켜 들 정도의 글 쓰는 실력.
이 책을 다 읽고도 아주 진한 여운이 남았는데, 아마 '앨리스'라는 불가사의한 캐릭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앨리스가 엉뚱하고 어려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나는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솔직히 구지 내가 아닌 누구든, 조금 별난 사람들에게 끌리지 않나? 앨리스가 쓰는 그 소설도 아주 특이했다. 마치 구하기 어려운 조미료를 뿌려넣은 느낌이었다. 그 나무 요새의 이름을 '다르윈드'라고 지은 것도, 자신의 집안을 비롯해서 여러 거짓말을 할 때도 앨리스라는 인물에 푹 빠졌다. 딥 다크 초콜릿에 마늘빵을 푹 빠트리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느낌이었다.
무게가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멜리사와 헤어질 때도 그냥 안녕, 한 마디면 충분한 아이였다. 그 장면에서 가슴이 먹먹했다. 그녀의 여름에 멜리사의 비중이 크지 않았던 걸까.

 음, 멜리사도 특이한 아이다. 하지만 앨리사만큼은 아니었다.
사실 특이하다기보단, 생각이 깊은 애다. 반복되는 자신의 일상에 지쳐 있었다. 케어가 필요했고, 앨리스에게서 무언의 치유를 받은 멜리사는 결국 앨리스와 함께 피로써 서약까지 한 '절벽에서 떨어지기' 약속을 오로지 스스로 극복했다. 멜리사는 앨리스와 함께 성장했다.
이 이야기의 주연은 내 생각엔 앨리스다. 멜리사는 앨리스와 멜리사 자신의 환경을 비추는 일인칭 시점용 인형에 불과한 듯했다. 두 명 다 집에서의 생활이 힘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앨리스는 모르겠으나 멜리사는 그걸 이겨냈다. 엄마와의 관계도 회복했다. 감동적이었다.

 책을 읽을 때, 마치 저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인 캐나다의 대자연 속에서 함께 그들과 성장하는 느낌이었다. 일단 공간적 배경이 되게 자연적인 곳이라는 게 되게 좋았다. 책에서 상쾌한 냄새가 나는 느낌이 어떤지 겪어 본 적 있나? 그냥 말도 안 되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또 두번째로는 주연 인물들이 내 또래다. 그들의 예민한 감수성이 공감대를 형성시켜주었다. 솔직히 공감하기엔 두 명이 너무 특이하다. 그래서 그냥 그들에게 끌렸다. 정말 매력적인 인물들이었고, 실존할 것만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꼭 만나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용기 있는 도전과 자존감을 회복해나가는 모습. 그걸 담담하게 표현한 이 서정적인 분위기의 이야기가 가슴에 물을 뿌린 것처럼 먹먹하고 생생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앨리스와 멜리사 두 캐릭터의 등장만으로도 내게 이 책은 최근 읽은 책들 중 단연 최고로 꼽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내 취향이었고,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그냥 다 읽고 나서 마음 속에서 적막이 흘렀다. 엄청난 명언이나 교훈을 남긴 책은 아니지만 내 스타일의 책이었으므로, 이번 글은 독후감이라기엔 민망하고 [그해 여름 너와 나의 비밀] 덕질용 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잔잔한 이야기로 힐링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블랙 아웃]을 읽고

[계단의 집]을 읽고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