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친구

난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가방 속에서 자꾸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났다.
처음엔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가방이 움직이고 소리가 좀 커질 때쯤에 이 안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이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감지해서 근처 놀이터 벤치에 앉아 가방을 조심스래 열어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가방엔 뻥 구멍이 뚫려 있었다. 처음엔 깜짝 놀랐으나 곧 그냥 가방 밑이 뚫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가방 속에 들어있었던 것들 모두가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다시 하니 방금 난 달그락 소리는 아마도, 책들과 필통이 바닥에 곤두박질 치는 소리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로 그대로 집에 가면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난 주변에 있는 작은 골목 귀퉁이에서 가방을 다시 열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분명 방금 가방을 열었을 땐 구멍만 뚫려 있었고 구멍 안으로 내 신발이 보였는데 이번엔 그 구멍 안에서 눈부시게 환한 보라색 빛이 여러 줄기로 나뉘어져 내 얼굴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놀란 나머지 가방 문을 휙 닫으려는 그 순간 그 구멍에서 작은 물체가 엄청난 속도로 '피슉' 하고 튀어나왔다.

난 깜짝 놀라 눈을 두리번거리며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물체를 찾았다. 작고...동그란 모양..마치 포켓 몬스터 (TV 애니메이션) 의 빨간 공 같았다, 그건..정말 작았다.

"뭐지 이 작은 건?"나는 그 물체를 톡톡 건드려 보려고 조심스래 다가갔다.
"에구구 아파라.."
"으아악!!!!! 뭐야,여기서 말이 들렸어..!!!!!!" 이럴수가, 작은 그저 공같은 물체에서 꼬마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야야... 무지 시끄럽네."
"ㅁ...뭐..뭐,뭐야! 어떻게 여기서 목소리가 들리지? 환청인가..?" 나는 그 목소리가 내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귀에 대고 들어보려고 애썼다.
"환청 아닙니다, 이 아가씨야." 그 공에선 요정보다 두 배쯤 작아 보이는 인형같은 게 머리를 삐죽 내밀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너...누구야? 어떻게 그렇게 작을 수 있지? 설마 말하는 인형인가?"

"아니, 난 달의 위성에서 생긴 표유류가 작아져서 만들어진 생명체야. 말할 수도 있고, 움직일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고, 걸을 수도 있어. 우리 생명체들의 최고봉을 '따봉왕' 이라고 하고 그 아들 , 즉 왕자를 '따봉왕자' 라고 부르는데 난 따봉 왕자야. 우리 태양계를 돌던 파편에 내 우주선이 맞아서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가 믿는 종교의 선두자님이 마법으로 네 가방에 시공간의 입구를 만들어 내가 겨우겨우 살아 나왔지. 아참, 네가 가방을 닫았으면 난 그대로 길바닥에 떨어져서 죽었을 수도 있어. 알고 있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난 저 인형처럼 조그마한 작은 것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따봉 왕자가 움직이고 걷는 모습을 보자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믿을게. 그런데 난 너와 이런 말 할 틈이 없어. 지금 가방이 뚫려서 엄마한테 혼나게 생겼다고. 넌 네가 알아서 도움을 받아 다시 네 행성으로 돌아가. 이 외계인아."
난 급하고 답답하고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 섞여서 하면 안 될 말을 해버렸다.

"너, 너무한 거 아니니? 너는 내 우주선만 고쳐 주면 난 한시 빨리 집에 갈 수 있는데 말야." 따봉왕자는 곧 울어버릴 것만 같은 눈망울로 날 바라보았다.

"그..그래, 우리 집에 가자."

그렇게 해서 우리는 집으로 갔다.

"어디를 고쳐야 하는데? 작아서 보이지도 않아."
"여기 내가 머리 내미는 곳만 막아주면 되. 그러면 자동으로 문 입구가 열리니까 여기를 유리로 채우면 끝이야."

나는 동네 근처에서 깨진 유리 조각을 하나 주워 왔다. 처음에는 따봉왕자가 머리를 내민 곳과 틀이 맞지 않아서 깨트리려고 애를 썼지만 엄마한테 대충 둘러대니 엄마가 깨주셨다. 유리는 우주선의 깨진 부분과 딱 맞아들어갔다.
그랬더니 따봉왕자의 말대로 바로 동그란 우주선 옆의 문처럼 보이는 게 스르륵 열리며 따봉왕자가 나왔다.

"꼬르륵-"

"너 배고프니?" 나는 부엌에 달려가 초코송이를 하나 들고 왔다. 따봉왕자의 전신은 거의 초코송이만 하기 때문에 하루 말고도 반나절은 먹을 양이었다.

"이거 갈때 먹어. 방금 외계인이라고 말 한건 미안해. 상처받았지?" 정말 미안한 마음에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아니, 사실인데 뭘. 고마워. 아, 그나저나 네 이름은 뭐니?"

"내 이름은 한하은이야. 후..그나저나 가방은 어떻하지.."

"내가 별에 도착하게 되면 가방의 구멍은 자동으로 사라져. 내가 네 가방 아래에 떨어지면 시공간의 입구가 열려서 날 우리 별로 보내주거든. 그럼 네 짐들도 모두 다시 돌아올거야."

"그렇구나...그런데 오늘 당장 가기는 지쳤는데 오늘저녁은 자고 가! 내가 제일 아끼는 인형들도 소개해줄게."

나는 밤새도록 따봉왕자와 수다를 떨며 놀았다.


"아...따봉왕ㅈ...! 어딨지....꿈인건가...?" 따봉왕자와 밤동안 정말 친해졌는데 이렇게 꿈으로 사라지는 건 정말 싫어...!

"무슨 소리야. 한하은! 꿈 아니야~먹을 것 좀 줘, 배고프네.."

"난 초코송이 하나와 생수 뚜껑에 포도주스를 담아 따봉왕자에게 건넸다."

"사실 어제 네가 준 초코송이 다 먹어버렸어...꺼억!"
이럴수가...? 대놓고 트림까지! 뭐 난 500원만으로도 불량식품 하나, 장난감 하나 살수 있으니..

"기다려 봐. 여기서 먹고 좀 쉬고있어. 줄 게 있어."
난 근처 문구점에서 '아폴로' 라고 하는 다양한 과일맛의 불량식품과 '뽀토로' 라는 새로 나온 캐릭터 인형 작은 것 하나를 뽑아 집으로 달려갔다.

"따봉왕자! 내가 선물 뽑아왔어. 자 여기."

"오오....? 너무너무 귀여워....하은...넌 정말 좋은 친구야....흑..."
왜 울고 그러는지....저녁동안 수다 떤 것 가지고 정이 너무 많이 들었나 보다.

"따봉...아...울지마.....가서 꼭 연락해야해....! 잘가, 또 보자 따봉왕자...!"
난 따봉왕자가 짐거리를 들고 우주선에 들어가자 난 손으로 우주선을 집어 가방으로 떨어뜨렸다.

... ... ...

"흑....흑....." 일어나 보니 얼굴엔 눈물이 흥건했다. 왜 잠이 든 거지...? 서...설마...?
그렇다. 이건 다 꿈이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나 생생했던 기억에 볼을 꼬집었다.

... ... ...

그로부터 55년 뒤, 12살 때 경험한 외계 친구와의 우정이 67살 할머니가 다 되어가는데도 그 기억은 아주 선명하게 난다. 오늘은 유난히 따봉왕자가 보고 싶었다.

그 때였다. 저 방 구석에서 무언가가 반짝 빛났다.

"저게 뭐지...?" 난 기어가서 그걸 주름 진 손가락으로 주웠다. 안경을 끼고 자세히 보았더니 어떤 작은 편지가 남아 있었다. 거기엔 아래처럼 쓰여져 있었다.

'한하은, 나 따봉왕자야. 네가 12살 때 만났는데, 기억나? 지금 이걸 보는 날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내가 너에게서 잊혀지지 않았다는 거야.

하은아, 넌 여전히 잘 지내고 있고 멋진 어른이 되었거나 될 거야. 그것만은 확실해. 어제 저녁에 너랑 떠들 때 정말 재미있었어. 꼭 다시 만나자.

-달의 위성 15번지 따봉국의 성으로 찾아와줘.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며칠 뒤 난 지금 우주로 갈 채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따봉왕자...늦었지만 지금 갈게....꼭..."

현재 날짜 2068년, 4월 1일. 따봉왕자, 나 한하은이 지금 너한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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