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이 책을 교보문고 바로드림으로 산 지는 정말 오래되었다. 아마 1년 정도 지난 것으로 기억한다. 한참 동안 독서를 하지 않다가 졸업이 다가오면서 시간이 널널해졌다. 뭘 해도 재미없고 심심하던 순간 책상 모퉁이에 방치되어 있던 빨간색 책에 눈이 가게 되어 한 번 꺼내 읽어 봤다.

줄거리는 세 명의 백수이자 도둑이 허름한 잡화점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사실 이야기의 초점은 그들이 아니라 '편지'의 주인공들에게 맞추어져 있다. 도둑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상담 편지를 받게 된다. 일반적이고 평범한 삶을 글로 풀어낸 에세이는 봤어도, 이렇게 자극적이고 다이나믹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은 책은 처음 읽는다. 아마 내가 독서를 자주 안 해서 그렇겠지만.

편지의 주인공들, 아마 네다섯 명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인물이었던 생선 가게 뮤지션의 이야기는 눈물이 소똥처럼 뚝 뚝 떨어져 책을 적시도록 슬펐다. 실은 처음에 편지를 읽었을 때는 그저 너무 한심하고 답답했다. '어른이 되어서 저렇게 철이 없나?', '몇십 살을 살고 열 여섯인 나보다 세상 물정을 모르네.' 등의 비평적인 생각만 했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아직도 그에 대한 한심한 이미지는 바뀌지 않았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가 어린 꼬마를 살리기 위해 몸을 불 속으로 냅다 던진 그 순간이 너무 슬펐을 뿐이지. 그리고 어쨌든 그 어린 꼬마의 누나 덕에 수년간 지속된 그의 무명 생활은 빛을 보게 되었다. 그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원래 예술가는 외롭고 추운 어둠 속의 삶을 살기 쉽다는 걸 안다. 나도 예체능에 한때 꽂혔었기에 여러 가지를 타고나야 하며, 따라줘야 하고 결코 그게 충족된다 한들 운이 없다면 빛을 보기 힘든 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때문에 더욱이 그의 행동이 터무니없이 어리석다고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나였다면?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그의 편지 내용은 결코 쉬운 고민이 아니다. 비슷한 예로는 대한민국의 입시가 있다. 어른들은 당장 좋아하고 간절한 꿈은 취미로 하고 잘 하거나 안정적인 길을 직업으로 삼으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귀가 떨어져라 들은 말이다. 마찬가지로 생선 가게 뮤지션인 그도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잠시 방황한다. 그래, 그 땐 자기 고집을 내세우는 게 좋다. 누군가의 말에 휘둘려 내 의지를 포기하게 되면 꼭 후회가 따르는 법이고 그것이 나를 다른 선택으로 이끈 사람에 대한 악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몇 년간 자기 일에 진전이 없었고 아픈 부모님도 부양해야 하는 처지였다. 당당하게 본가를 나선 지 몇 년 동안의 성과가 제로라는 사실에 너무 수치스러운 그 감정을 본인도 잘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였다. 그리고 나미야 잡화점에 편지를 보냈다. 음악가의 길은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적어도 집안 사정은 걱정될 문제가 없이 깔끔해야 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재능도, 깨끗한 집안 사정도 어느 하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리석고 이기적인 판단을 했다. 문학이기에 이런 결말이 가능했던 것이지, 현실 속에서는 두고두고 후회될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 많았던 나는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또래보다 일찍이 무언가를 포기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경험을 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수십 년이나 남은 내 인생에서 크고 작은 갈림길이 올 때마다 나는 고민하고 머리를 쥐어뜯을지도 모른다. 후회가 남지 않을 선택이란 없다. A를 택하면 B가 더 좋아 보이고, B를 택하면 A를 고를 걸, 한다. 그러나 후회도 하나의 경험이다. 그것이 내게 미련을 주든 무슨 결과를 낳든 중요치 않다. 어찌 되었든 내가 그리는 길에 있어서 해가 될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선택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후회하든 만족하든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속상한 마음은 사악 하고 가라앉는다. 그런 마음을 굳이 부인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받아들이고, 나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나 자신과 대화해야 한다. 이것이 후회되는 감정을 컨트롤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이렇게 여럿의 이야기들 중 '생선 가게 뮤지션'의 이야기에서 나의 가치관을 녹여 글을 써 봤다. 어른이 되면 저렇게 힘든 일들이 들이닥칠 거라고 생각하니 두렵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극적인 사건이 내 인생 지도에 그려질 것인가, 궁금되기도 한다. 나는 무시를 못할 일이라면 오는 대로 받아들이고 나미야 씨처럼 진솔한 태도로 해결할 것이다. 오랜만에 교훈적인 소설을 읽었다. 완독을 했으니 이제는 내가 나미야 씨였다면 저 편지들에 어떻게 답변했을까? 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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