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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을 읽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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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몇 안 읽은 목차 중 맨 앞의 <관리의 죽음>은 내게 헛웃음을 유발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주인공 체르뱌코프가 오페라 극장에서 장군의 뒷통수에 대고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생긴 아주 사소한 문제로 바보 같은 사과를 반복하는 내용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부서는 아니지만 높은 직급의 장군에게 무례를 범한 것이 상당히 폐라고 느낀 듯 했지만, 그의 계속되는 사과는 장군과 나를 포함한 보는 이들에겐 우습고 답답한 행동이었다. 흔히 지금의 사회에서 '눈치 없는 놈'으로 불리기 적합한 체르뱌코프. 사실 저런 성격의 사람들은 가끔 가다 한 두 명씩 있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뭔 생각으로 저렇게 철없이 굴까.. 생각했는데 체르뱌코프를 보니 그저 두 사람 간의 오해였을 것 같기도 했다. 사람 간의 오해는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 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다. 나도 항상 인간관계로 힘들 때마다 주된 원인이 오해였던 적이 많다. 오해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자존심이 세서 쉽게 미안하다는 말이 잘 안 나오는 성격이다. 고치고 싶은 성격 중 하나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자존심 세우는 행동은 정말 평생 후회할 일인 것 같다. 주위의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어서 화해하기! 그리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기는 필수다. 체르뱌코프가 장군의 입장이 되어봤을 때 '아, 내가 너무 귀찮게 한 건가? 이제 더 이상 사과하면 더 실례이겠다.'라고 생각하기만 했다면 마지막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두 가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다면 사람 간의 오해는 쉽게 커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의 내용처럼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말을 안 해주면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답답하기만 할 뿐. 장군처럼 저렇게 화만 내는 것보다 "나는 별로 신경 안 쓰여요. 벌써 다 잊었는걸요."라고만 해 줘도 끝날 일인데. 아마 장군 때문에 내가 그렇게 ...

Memento를 감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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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여 년이나 지난 오래된 이 영화는 이렇게 한참 뒤에 봐도 전혀 이상하거나 구식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놀란 감독의 영화는 내게 매번 적응되지 않는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아주 매력적인 영화들, <인터스텔라>, <인셉션> 등.. 메멘토는 위의 두 영화와는 조금 달랐다. 감동보다는 충격의 비중이 극도로 컸다. 주인공의 감정 묘사와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가 부딪히며 비교적 몰입이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영화를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던 건 주연 배우의 연기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의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병, 20분도 채 안 돼서 이전 일을 잊어버리는 그 몹쓸 병은 실제로 존재하는 병이 아니라는 말을 듣기 전까진 진짜로 너무 끔찍한 병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존재했다면 그것은 죽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후반부에서 주인공에게 사실직고를 하는 테디를 보며 아, 이제 이 고구마 같던 상황이 풀리겠거니 했지만 레너드의 행동은 충격 그 자체였다. 처음에 난 그의 그런 태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말로 이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모든 사실이 밝혀지는 상황이었음에도 어차피 레너드의 기억은 곧 리셋되니 결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가 죽을 때까지 똑같은 상황 속에 갇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나라면 당장이라도 죽고 싶을 텐데. 그 몸뚱아리는 자아가 없는 빈 껍데기일 뿐, 복수심으로 가득 차 숨막힌 하루를 살아가는 그를 보며 정말 가슴이 짠했다. 테디가 진실을 알려주었을 때 자기 몸에 새긴 문신과는 얘기가 맞아떨어지질 않으니, 설령 맞다 한들 레너드의 정신, 상태로는 감당하기 어려웠겠지. 충격을 흡수하기엔 그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으니까. 정말 머리가 복잡해 죽을 뻔한 영화였지만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코드로 만든 영화 중에서는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두뇌게임이나 머리 웜업하고 싶을 때 보면 좋을 영화다.